(칼럼) 땀흘리는 스마트폰
또, 이렇게 일 년이 지나가나 봅니다.
진료실 밖 은행나무에도 잎이 얼마남지 않았네요.
그러고 보면 세월이라는 것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이 무심히 지나가는 세월과 더불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40대 이상의 분들께는 살짝 죄송해 지려고 합니다. ^^)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 보면 참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공상과학 소설에서는 누구나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전화기가 나와서
사람들마다 작은 전화기가 있을 것이라던지, 서로 얼굴을 보며 전화통화를 한다던지,
아주 작은 컴퓨터가 나와서 들고 다니면서 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었는데,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 그것들이 모두 실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면을 보면 현대사회의 산업기술 발전이라는 것이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기가 어렵다.”며
특이한 호소를 하신 분이 저의 진료실을 찾으셨습니다.
저는 아직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아서 좀 특이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함께 있는 간호사도 손가락에 땀이 많이 나면 스마트폰이 잘 인식을 못한다고 알려 주더군요.
자세히 진찰을 해보니 긴장할수록 손과 발에 땀이 많이 나는
전형적인 일차성 수족 다한증 환자분이셨습니다.
보통은 문서작업이 힘들다든지, 악수할 때 신경이 쓰인다든지 하는 호소가 가장 많은데,
이 분의 호소는 좀 특별하게 와 닿았습니다.
물론 이분도 다른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환자분께서 상담을 마치고 나가실 때 쯤, 땀이 묻은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꼭 스마트폰이 땀을 흘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까,
2007년에 스티븐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모두 10개의 뛰어난 조작장치를 타고난다.”라고 말했던 생각이 납니다.
결국에는 손으로 조작하는 아이폰 스타일의 스마트 기기와 운영체제들이
국제적인 표준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더구나 최근의 모든 스마트 기기들의 스크린은
터치폰에 주로 사용되던 감압식 방식을 버리고
좀 더 손의 상태에 민감한 정전식 방식을 채택하면서
손에 땀이나 물이 묻을 경우 작동이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데스크탑을 대신할 수 있는 태블릿 컴퓨터가 보급화되면서
정말로 손가락 (주로 검지손가락) 터치의 전성시대가 도래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쉬운 것은 스마트기기가 발전하면서
시각 장애우와 청각 장애우를 위한 기능들은 많이 포함되는 데 비해서,
다한증 환자들을 위한 기술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다한증 환자분들이 스마트폰을 불편하지 않게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들이 하루속히 개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스마트폰에 대해서만 이야기 했지만
실제로 현대 사회는 이제 스마트폰의 사용뿐만 아니라,
종이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문서 작업,
그리고 사람과 항상 가까이 맞대며 살아야 하는 구조로 바뀐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과거와 같은 농경사회였다면
다한증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땀에 민감한 사회로 변했다고나 할까요?
과거에 농사를 지을 때 쟁기나 호미 등에서는 덜 불편했던 다한증이
현대사회의 IT기기 앞에서는 더 큰 불편으로 와닿게 된 것입니다.
이쯤되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산업기술 발전이라는 것들이
다한증 환자분들에게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끌고 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갑자기 추워지는 늦가을에 주저리 주저리 적어보았습니다.
2011년 11월 23일
다한증 환자이면서 의사인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