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 마지막 DSLR 이야기 –

오랫동안 함께했던 캐논 EOS 5D를 결국 떠나보냈다.
아마도 내 블로그 *Photo & Diary* 카테고리의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EOS 5D를 손에 쥐었을 때의 감정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만 해도 풀프레임 DSLR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비가 아니었다.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다”는 마음속 로망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결국 내 손에 들어온 EOS 5D.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오래된 카메라지만,
당시 이 카메라는 정말 특별했다.
2005년에 등장한 EOS 5D는
캐논 최초의 대중형 풀프레임 DSLR 중 하나였고,
1280만 화소의 CMOS 센서와
풀프레임 특유의 얕은 심도,
그리고 필름 같은 색감을 가진 카메라였다.
특히 사람들은 아직도 이 카메라 특유의 결과물을 이야기한다.
일명 “오디 색감”.
과하지 않은 피부톤과
부드러운 입자감,
그리고 어딘가 아날로그 필름을 닮은 공기감.
지금의 최신 카메라처럼
눈동자를 자동으로 추적하지도 못했고,
연사 속도도 느렸고,
동영상 기능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진 한 장 한 장에
오히려 더 집중하게 만들었던 카메라였다.

5D Mark II가 나왔을 때도,
Mark III와 IV가 나왔을 때도
수없이 기변 충동이 왔다.
더 좋은 AF,
더 높은 화소,
더 빠른 처리 속도.
솔직히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늘 결국 같은 생각으로 돌아왔다.
“내 수준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미 이 카메라의 감성을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한 장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손에 익은 셔터감,
전원을 켤 때의 느낌,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습관,
묵직한 무게감까지
어느 순간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진다.

그러다 시대가 변했다.
캐논의 미러리스 R 시리즈가 등장하고,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볍고, 빠르고, 정확하고,
기술은 DSLR을 빠르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조금씩 카메라를 들고 나가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카메라 바디, 배터리, 충전기, 렌즈 몇 개,
삼각대까지 챙기느라 가방이 무거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핸드폰 하나로 모든 것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조차
예전처럼 아쉽지 않았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결국 R 시스템으로 넘어가면서
렌즈도, 삼각대도,
심지어 카메라 보관함까지
하나씩 정리했다.
그래도 EOS 5D만큼은 쉽게 못 팔았다.
혹시 병원에서라도 쓰게 될까 싶어
EF 40mm 팬케이크 렌즈만 남겨
끝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병원에서 사용하던 의료용 DSLR인 EOS 100D마저 고장 나고,
그 자리도 스마트폰이 대신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DSLR을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EOS 5D를 판매했다.

거래는 학여울역에서 했다.
구매자는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나이에 이미 카메라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있었다.
요즘 세대는
필름 카메라나 DSLR보다
스마트폰과 미러리스에 더 익숙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청년은 EOS 5D의 특징과 감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특히 그 청년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5D 셔터 소리 때문에 다시 중고 카메라를 사게 됐어요.”
순간 괜히 웃음이 났다.
찰칵— 하는 묵직한 셔터음.
요즘 카메라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기계적인 감각.
그 소리를 좋아해서
오래된 DSLR을 다시 찾는다는 말이
왠지 반갑고도 신기했다.
그리고 문득
내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약 30년 전,
중고 카메라를 찾아다니며
설레는 마음으로 장비를 사고,
카메라 매장에서 한참을 구경하곤 했었다.
좋은 카메라를 손에 넣으면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이던 시절.
아마 그 청년도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카메라가 단순히 중고 물건으로 팔려 나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시간 속으로 이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EOS 5D다운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수많은 디지털카메라를 사고 팔고,
기변을 반복했지만
끝까지 남아 있던 마지막 플래그십 카메라.
그게 바로 EOS 5D였다.
생각해보면
이 카메라와 함께했던 시간 속에는
내 젊은 날의 기록들이 참 많다.
병원 이전 전의 모습,
여행, 일상, 거리 풍경,
그리고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카메라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기계가 아니라
시간을 저장하는 도구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
이제는 더 이상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다니지 않는다.
렌즈를 고민하지도 않고,
배터리를 충전하지도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 하나로
훨씬 가볍고 편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가끔은
셔터를 누르던 그 묵직한 감각과
광학 뷰파인더 안의 세상이
문득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안녕. EOS 오디.
그리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