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아주 재미있게 본 책이 있다.
파트리크 쥔스킨트의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소설의 내용은 출생시부터 냄새에 대한 초자연적인 감각을 가진 주인공의 삶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냄새라는 참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분야인데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는 다양한 비유를 통해서 냄새를 자세하게 묘사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아울러, 그러한 냄새에서 진화해서, 그 냄새에 대한 열정으로 결국에는 향수에 집착하는 주인공이, 절대향을 찾아서 살인을 하고, 향수로서 사람을 조정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점차 추리물에 가까워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순식간에 책을 놓지않고 단번에 읽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이 주인공이 맡은 냄새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람의 몸에는 여러 분비기관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피지샘이며, 땀샘의 경우에는 아포크린샘과 에크린샘이 있다.
이러한 분비샘들은 태생기를 거치면서 그 분포나 발달영역이 변화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냄새에 관계된 것이 아포크린샘이며, 이 아포크린샘은 출생후에는 결국에는 겨드랑이와 귀, 유두, 성기주변에만 흔적적으로 남게 된다. 99%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무색무취의 에크린땀샘과 달리, 아포크린샘은 샘세포자체의 파괴에 의해서 98%이상의 지방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때문에 독특한 냄새가 나게 된다.
이 아포크린샘은 원시시대때부터 인간의 종족성을 나타내는 요소인 것이다. 즉, 세포자체의 분해와 이 분자물질을 우리의 코속의 후각세포에서 그 분자를 인식하고, 이 개체가 나와 같은 종족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요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진화하면서, 다른 동물들과 달리, 급속하게 후각세포가 퇴하되었고, 그러면서 이 분비샘 역시 퇴화된 것이다.
따라서, 냄새의 종류는 대략 약 50만종이 있는데, 사람은 그 중에서 약 2,000~4,000종류만 분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향수”에 나오는 주인공은 이 50만종을 모두 분간하는 아프리카 코끼리와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주로 진료하는 액취증이라는 이른바 겨드랑이의 암내의 경우에는 이 아포크린샘의 유전성과 관계가 있다.
이 액취증에 관련된 유전자가 “ABCC11″이라는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는 2001년에 발견되었는데, 많은 연구를 통해서 이 유전자가 물귀지(Wet ear wax)에 관계될 뿐 아니라, 폐암이나 유방암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전세계적인 유전자 검사(Human Genome Project)를 통해서, 이 유전자를 가진 인종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아프리카 인종은 거의 98%이상 가지고 있으며, 유럽은 60~80%, 몽고는 약 20%, 중국은 10%이며,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독 작은 분포로 7%내외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아프리카의 인종이 15만년에서 3만년전에 유럽과 아시아를 통한 이동을 했음을 추정이 가능해졌다. 반면에 일본은 약 20%정도로 우리나라에 비해서 높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은 인도네시아 등을 통해서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즉, 액취증을 판단하게 되는 이 유전자는 인류의 기원과 이동에 대한 실마리도 되는 것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럼, 만약 “향수”의 주인공이 한국에 오게 되었다면? 소설이나 영화에서 같이 냄새로 사람을 조작할 수 있었을까?
이 부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냄새라는 것은 시각이나 청각과 달리 굉장히 주관적인 형태의 오감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이야기할 정도로 긴 이야기이다.)
따라서, 영화의 배경이 된 프랑스의 냄새로 한국사람들을 조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ABCC11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사향과 같은 암내가 성적 충동을 일으킬 정도의 좋은 냄새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불쾌한 암내일 뿐인 것이다.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의 구별은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환경이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